극지는 기후변화 시작이자 끝 100년 후 내다볼 것
극지는 기후변화 시작이자 끝 100년 후 내다볼 것
한국의 극지 연구는 국가 발전과 비례했다. 최첨단 장비를 써서 비용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 발전의 지표인 국제스포츠대회가 열리는 해에 극지 기지들이 설치됐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남극에 처음 진출한 세종과학기지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북극 첫 거점인 다산과학기지는 월드컵을 개최한 2002년에 각각 설치됐다.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도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린 2014년부터 가동됐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극지 분야를 국책 연구 프로그램으로 만든 건 1990년대 초이다.
극지연구소(극지연)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분리돼 독립기관이 된 것도 20년밖에 안 됐다.
극지연을 이끄는 신형철 소장은 30년 넘게 극지를 개척한 연구자이다.
신 소장은 서울대 해양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남극 월동연구대원으로 참여하며 극지 연구를 시작했다.
극지에서 크릴새우 같은 해양생물을 연구하며 극지생물해양연구부장과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을 역임했다.
신 소장의 극지연구에 대한 사랑은 펭귄이 그려진 넥타이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신 소장은 지난달 18일 인천 송도에 있는 극지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극지 연구는 기후변화가 인류가
당면한 현안이 되면서 중요한 연구 분야로 떠올랐다”며 “극지는 기후변화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라고 말했다.
얼음과 눈으로 덮인 남극과 북극은 기후를 조절한다. 차가운 물을 해양으로 내보내 해류를 만드는 ‘바다의 심장’ 역할도 한다.
동시에 변화에 굉장히 민감한 곳이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동토층의 메탄 같은 원시 기체가 나와 지구온난화 속도가 더 빨라진다.
크릴새우나 해조류 같은 먹이사슬 하위를 담당하는 극지방 생물이 사라지면 지구 생태계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신 소장은 “큰 비용이 들어도 극지 연구를 지속하는 이유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이 모든 위기가 10년 안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극지 연구는 이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데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북극이나 남극에서 기상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기후모델에 적용해 한반도가 있는 중위도에 나타날 수 있는 기상재해를 예측한다.
극지는 우주·심해 환경 같은 극한 상황에서 사용할 기술을 시험하는 테스트 베드이기도 하다.
신 소장은 “극지 연구는 인류의 지식을 증진하는 목표를 가졌지만, 그 성과나 파급 효과는 국가 전략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남극의 땅을 이루는 얼음을 시추해 표본을 연구하면 100만년 전을 알 수 있고, 그 역사를 보면 100년 후를 전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이제 과학 연구도 실제로 어떤 쓸모가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극지 연구는 호기심에 근거해 신기한 걸 찾는 연구에서 이제 지구 전체에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연구 성과를 국민에 보여주고 호응을 얻어내 모멘텀(momentum, 동력)을 확보하는 연구소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극지연구소는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남극 내륙기지를 설립하기 위한 ‘K-루트 탐사대’와 2029년 취항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 쇄빙선’ 사업이다.
두 사업은 한국 연구진이 다른 국가의 도움 없이 남극과 북극을 더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남극 내륙기지는 두께 2000~3000m의 대륙 빙하 밑에 있는 ‘빙저호(氷底湖)’에서 생명체를 찾는 임무를
차세대 쇄빙선은 현역 쇄빙선 아라온호의 뒤를 이어 북극을 연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신 소장은 “남극 내륙기지와 차세대 쇄빙선이 마련되면 추격형 연구에서 벗어나 극지 관련 국제회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오는 2030년 국제극지 학술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핵심적인 연구와 기반 시설 확보를 빠르게 확보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