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전극 심어 로봇팔 조종 따끔 촉각도 느낀다
뇌에 전극 심어 로봇팔 조종 따끔 촉각도 느낀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스콧 임브리(59)씨는 1985년 교통사고로 척추뼈 3개가 부러지고 척수의 70%가 끊어졌다.
사지 마비를 선고받은 그는 수년간 물리 치료와 재활로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게 됐지만 매우 제한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던 그는 2020년 10월 시카고대에서 뇌에 특수 전극 4개를 심는 수술을 받았다.
대뇌의 운동 피질이 보내는 신호로 로봇 팔을 조종하도록 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연구에 참여한 것이다.
그는 생각만으로도 로봇 팔을 조작해 물건을 만지게 됐다. 최근에는 로봇 팔이 물체에 닿는 촉각을 뇌로 느끼게 됐다.
그는 “손에서 따끔거리고 찌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며 “덤불에 손을 뻗는 것 같았다”고 했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생각만으로 사물을 조종할 수 있는 BCI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면서 현실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BCI 기술이 상용화되면 사지 마비 환자가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뇌를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전기 자극을 주는 등 치료까지 가능하다.
심지어 지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안되고 있다. 상상 속 기술이었던 BCI가 인류의 감각을 회복하고 질병을 극복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BCI 시장 규모는 2025년 28억3000만달러(약 4조1000억원)에서 2030년 65억2000만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손바닥에 쓰는 글씨, 촉각으로 구별
임브리가 이식한 BCI 칩은 미국 ‘블랙록 뉴로테크’가 만들었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은 이 기기로 임브리를 포함한 두 환자의 촉각을 재현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지난 16일 밝혔다.
뇌로 로봇 팔을 조작할 수 있어도, 촉각이 없으면 물건을 잡거나 들어 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연구팀은 뇌에서 발생하는 팔과 손의 운동 관련 전기 신호를 분석했다.
로봇 팔이 물건을 만질 때 센서가 전기 자극을 뇌로 전달해 마치 손에 감각이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설계했다.
연구 참가자들은 물체의 모서리나 모양,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또 로봇 팔의 손바닥에 적는 알파벳이 무엇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촉각 재현 기술이 발전했다.
연구팀은 “BCI 기술을 통해 재현된 인공 촉각은 손재주를 갖고, 물건을 조작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BCI 기업 뉴럴링크는 최근 세 번째 참가자에게 BCI 칩 ‘텔레파시’를 이식했다.
뇌에 심은 전극이 뉴런의 신호를 포착하고,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무선으로 외부 컴퓨터에 송신된다.
지난해 뉴럴링크는 첫 임상 실험자가 생각만으로 실제 컴퓨터를 조작해 체스 게임을 즐기는 영상을 공개했다.
뉴럴링크는 올해 BCI 이식을 20~30건 계획하고 있다.
초박형 필름 BCI도 개발돼
상용화를 향한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 BCI 기업 싱크론은 이미 호주에서 환자 4명, 미국에서 10명에게 BCI 장치를 이식했다.
뇌혈관 안으로 칩을 넣는 ‘스텐트로드’ 기술을 쓰는 것이 차별점이다.
이를 통해 아마존의 인공지능(AI) 비서 알렉사에 명령을 내리거나, 애플의 확장 현실(XR) 기기 비전프로와 연결해 게임을 하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뉴럴링크 공동 창업자가 세운 ‘프리시전 뉴로사이언스’는 두께가 1㎜도 안 되는 BCI 칩을 개발했다.
뇌 관통 없이 두개골에 미세한 틈을 만들어 이식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헬스케어 기업 와이브레인이 사지마비 환자의 재활을 돕는 BCI 기반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BCI 칩을 운동신경 마비 환자에게 이식해 뇌파에서 움직임의 의도를 추출하고, 이를 AI로 분석해 전동 휠체어를 제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