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행성에 뜬 무지개 태양계 밖에서 첫 관측
외계 행성에 뜬 무지개 태양계 밖에서 첫 관측
성인(聖人)을 그린 종교화를 보면 머리 뒤로 둥근 후광(後光)이 비친다.
과학자들이 태양계 밖에서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후광을 발견했다.
지구나 금성에서 가끔 관측되지만 외계 행성에서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모니카 렌들(Monika Lendl) 스위스 제네바대 교수 연구진은 지난 5일 “지구에서 640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거리에 있는 WASP-76b 행성에서 무지개와 비슷한 ‘글로리(Glory)’ 발광 현상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실렸다.
WASP-76b는 물고기자리에 있는 태양계 밖 외계 행성으로, 2013년 처음 발견됐다.
WASP-76b는 수성이 태양을 공전하는 거리보다 12배 더 가깝게 별에 붙어 1.8일 주기로 공전한다.
렌들 교수는 “WASP-76b는 항성의 강렬한 우주방사선에 의해 ‘부풀어 오른’ 상태로, 목성보다 질량은 10% 적지만 거의 두 배나 더 크다”고 설명했다.
사진을 보면 외계 행성의 밤과 낮을 가르는 경계선의 오른쪽에 무지개색으로 둥근 빛들이 보인다.
무지개나 글로리는 모두 태양에서 온 빛이 구름 입자에 부딪혀 반사되면서 생긴다.
무지개는 반원형으로 보이지만, 글로리는 성인 뒤의 후광처럼 원형으로 나타난다.
글로리는 관찰자가 태양과 햇빛이 반사되는 구름 입자 사이에 있을 때 볼 수 있다.
연구진은 “WASP-76b 행성에서 관측된 발광 현상이 글로리라면 태양계 밖에서 처음 관측된 사례”라고 밝혔다.
태양계에서는 지구 외에 2014년 금성에서 글로리가 관측됐다.
당시 유럽우주국(ESA)의 비너스 익스프레스 탐사선은 금성 상공 6000㎞에서 1200㎞에 걸쳐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글로리를 포착했다.
이번 제네바대 연구진 유럽우주국(ESA)의 키옵스(CHEOPS) 우주망원경으로 WASP-76b를 관측하다가 글로리 현상을 포착했다.
2019년 발사된 키옵스는 무게 273㎏, 길이 1.5m인 소형 우주망원경에 속한다. 지구 700㎞ 상공을 돌며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글로리는 지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비행기 그림자를 둘러싼 구름이나 안개가 낀 산 정상에 오른 등산객의 그림자에서 글로리가 관측된다.
햇빛이 완벽하게 균일한 물방울로 이뤄진 구름에 반사될 때 발생한다.
다른 행성은 구름 성분이 물이 아닐 수 있다. 2014년 발표된 금성의 글로리는 지름 2.4㎛(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인 황산 구름 입자에 햇빛이 반사되면서 발생했다.
이번 WASP-76b 행성은 더 독특하다. 연구진은 “지구의 구름 입자는 물로 이뤄져 있지만, WASP-76b의 구름 입자는 철일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2020년 제네바대 연구진은 네이처지에 WASP-76b에는 철 성분의 비가 내린다고 발표했다.
WASP-76b는 공전과 자전 주기가 같아 한쪽 면만 별을 향하고 있다. 달이 공전과 자전 주기가 같아 늘 지구에서 앞면만 보이는 것과 같다.
늘 항성의 빛을 받는 왼쪽 낮면은 지구가 태양에서 받는 것보다 4000배나 되는 복사에너지에 노출돼 온도가 섭씨 2400도를 넘는다.
분자가 원자로 분해될 정도로 뜨거워 철과 같은 금속마저도 증기로 변해 대기로 올라간다.
증발한 철 입자는 햇빛을 받지 않는 오른쪽 밤면에서 응축돼 철 구름을 만든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그래서 글로리가 행성의 밤면에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지금까지 태양계 밖에서 글로리 현상이 관측된 적이 없는 이유는 특정한 조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