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러브레이스?
컴퓨터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러브레이스?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컴퓨터의 초기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거의 유일한 여성 과학자다.
러브레이스는 이 분야에서 ‘최초’로 무언가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무엇에서 최초를 기록한 것일까?
막연하게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최초로 컴퓨터를 발명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컴퓨터의 발명가, 이것은 진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진실이 아니다.
러브레이스의 진짜 공헌을 알려면 찰스 배비지가 설계한 기계식 컴퓨터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배비지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발명가였다. 배비지는 기계로 인간의 지적 작업을 대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왔다.
오랜 연구 끝에 그는 수학의 함수값을 계산할 수 있는 기계를 설계했다.
‘차분기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계는 곱셈이나 나눗셈 없이 덧셈과 뺄셈으로 함수의 값을 계산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아 배비지는 차분기계 제작에 착수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완성을 보지 못했다.
차분기관보다 개념적으로 진일보한 것이 바로 ‘해석기관’이었다.
차분기관이 수준 높은 계산기라면 해석기관은 이를 한 차원 뛰어넘었다.
해석기관에는 구멍을 낸 천공카드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저장, 입력할 수 있었으며 반복적인 데이터 처리도 가능했다.
해석기관은 오늘날의 전자식 컴퓨터와는 분명 다른 기계식 컴퓨터이지만 데이터 입력 및 반복 처리와 같은 데이터
처리 특성으로 인해 인류 최초의 컴퓨터로 평가받는다. 결국 최초의 컴퓨터 발명가는 러브레이스가 아닌 배비지인 것이다.
러브레이스는 배비지의 해석기관에서 사용할 첫 프로그램을 만든 최초의 프로그래머였다.
놀라운 점은 그 시점이 해석기관이 만들어지기 이전이라는 것이다.
설계도만 있는 기계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소프트웨어를 만든 셈이다.
지인을 통해 배비지를 소개받은 러브레이스는 가끔씩 배비지의 조언을 들으며 스스로 해석기관의 작동 원리를 익혔다.
당시 배비지와 동료들은 루이기 메나브레아라는 사람이 프랑스어로 발표한 배비지의 강연 요약을 영어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 일의 적임자로 러브레이스를 꼽았다.
일을 맡기면서 배비지는 러브레이스에게 전문성을 발휘해 차분기관과 해석기관의 차이를 더 써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해서 번역된 글에는 원문보다 세 배나 긴 7개의 주석이 더해졌다.
그 결과 러브레이스는 1843년 발표한 ‘배비지가 발명한 해석기관에 관한 소개’에서 해석기관이 계산을 넘어 여러 지적 작업,
예를 들어 음악도 작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초의 프로그램이 제시된 것은 이 글의 ‘주석 G’다.
여기서 러브레이스는 확률론이나 통계학에서 쓰이는 ‘베르누이의 수열’을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제시했다.
러브레이스는 루프문, 조건문, 서브루틴 등의 개념을 도입해 해석기관으로 베르누이의 수열을 구하는 작업의 순서도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코딩의 기본 개념을 확립한 것이다.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포함한 근대 이전의 여성 과학자들에게는 본인의 역량 이외에도 주변의 도움이 중요했다.
교육과 연구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 속에서 그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