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代 바이러스 부활시켜 닭 전염병 막는다
古代 바이러스 부활시켜 닭 전염병 막는다
파킨슨병 환자 스키장까지 이끈 줄기세포 연구 끝을 보겠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인 ‘사슴뿔을 가진 소년’은 알래스카 빙하(氷河)에서 얼음 기둥을 시추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여기서 나온 태곳적 바이러스가 밖으로 유출되면서 반인반수(半人半獸) 아기들이 태어나는 한편, 치명적인 호흡기 전염병이 퍼져 인류를 멸종위기로 내몬다.
과학자들이 드라마처럼 고대의 바이러스를 부활시켰다.
이번에는 드라마와 달리 가축을 살릴 단서를 제공했다.
영국과 독일 과학자들은 지난달 1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1000년 전 닭 유골에서 DNA를 채취해 마렉병 바이러스(MDV)의 독성을 높이는 돌연변이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마렉병 바이러스(MDV)는 닭 같은 가금류의 림프계에 염증과 종양을 일으켜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닭의 90% 이상을 폐사시킨다.
농가에서는 바이러스를 막는 데 한해 10억달러를 쓰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에 찾은 돌연변이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드라마에서 태곳적 바이러스가 알래스카의 얼음 기둥에서 나온 것은 일리가 있다.
빙하는 오랜 세월 내린 눈이 압축된 것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나이가 오래된 눈과 공기가 들어있다.
이 때문에 극지에서 시추한 얼음 기둥인 빙하 코어(ice core)는 과거 지구가 어땠는지 알려주는 ‘냉동 타임캡슐’로 통한다.
그 안에는 공기와 물뿐 아니라 오래전 바이러스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연구진은 빙하 코어 대신 고대 유적지에서 나온 닭의 유골을 뒤졌다.
옥스퍼드대 생물학과의 에이드리언 스미스(Adrian Smith) 교수와 독일 뮌헨대 수의학과의 로랑 프란츠(Laurent Frantz) 교수 공동
연구진은 유럽과 중동의 고고학 유적지 140곳에서 나온 닭뼈 1000여개를 확보했다. 여기서 DNA를 추출해 분석했더니
마렉병 바이러스는 1907년 처음 질병이 발견되기 최소 1000년 전부터 유럽에 퍼져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유적지에서 나온 고대 마렉병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오늘날 바이러스와 같은 방식으로 배열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독성 증가가 바이러스 유전자의 구조적 변화가 아니라 유전자를 이루는 염기 한두 개에만 영향을 미치는 점 돌연변이에서 비롯됐음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바이러스에서 일부 점 돌연변이가 지난 세기 동안 독성을 증가시키는 톱니바퀴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종양 형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Meq라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고대 바이러스는 숙주에 종양을 유발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실험에서 이 가설은 사실로 입증됐다. 논문 제1 저자인 옥스퍼드대의 스티브 피다만(Steven Fiddaman) 박사는 고대 바이러스와 같은
Meq 유전자를 합성해 닭 세포에 삽입했다. 그러자 종양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작동하지 않았다.
반면 오늘날 바이러스에 있는 Meq 유전자는 닭 세포에 들어가자마자 종양을 유발했다.
피다만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마렉병 바이러스의 진화 역사를 밝힐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전염병을 관리할 전략으로 안내할 수 있는
과거로의 창을 열었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의 독성을 증가시킨 돌연변이를 찾은 만큼, 이곳을 공략하는 새로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험하지 않던 바이러스가 왜 갑자기 치명적인 형태로 돌변했을까.
연구진은 닭을 좁은 우리에 넣고 집단 사육하는 산업적 양계업이 성장하면서 바이러스의 독성도 강해졌다고 추정했다.
사실 1907년 마렉병이 처음 발견됐을 때만 해도 바이러스로 인한 폐사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세기 동안 인간은 닭을 대량 사육해 350억마리까지 늘렸다. 이제 닭은 지구에서 가장 흔한 조류이다.
연구진은 산업적 양계업이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를 높였다고 밝혔다.
닭이 병을 퍼뜨리기 전에 죽으면 바이러스도 소멸한다. 하지만 밀집 사육 환경 탓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이 주변과 접촉하기 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