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모습 재현하는 고생물 예술가
공룡 모습 재현하는 고생물 예술가
어린 시절 공룡은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존재였다. 누구나 한 번쯤 책에서 티라노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를 보고 공룡 세계를 탐험하는 상상을 한 기억이 있다.
과거 2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공룡의 첫 인상은 책에 나오는 삽화가 결정했다.
공룡 그림은 어린이를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 통로였으며, 어른에게는 공룡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그림으로 공룡을 복원하는 사람이 ‘팔레오아티스트’이다. 고생물학(‘Paleontology)과 예술가(Artist)를 뜻하는 영어를 합친 말이다.
팔레오아트는 공룡을 포함한 고생물을 과학적 자료에 따라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을 말한다.
팔레오아트는 공룡을 재현하고 연구하는 고생물학 논문과 박물관에서도 빠질 수 없는 존재이다.
국내에서도 2010년대부터 팔레오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작가들이 나타났다.
어린이를 위한 공룡 그림책 ‘읽다 보면 공룡 박사’를 그린 최유식 작가와 ‘신비한 공룡 사전’을 그린 이준성 작가가 대표적인 팔레오아티스트이다.
둘 다 ‘국내 1호 공룡 뼈 박사’인 박진영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과 공룡 그림책을 만들었다.
어린이를 위한 책뿐만 아니라 연구 논문에 실리는 삽화도 이들의 몫이다.
한국 대표 팔레오아티스트인 두 사람을 만나 공룡이 우리 품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살펴봤다.
지난달 24일 경기 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만난 최유식 작가는 공룡 모형과 공룡 그림이 늘어선 작업실에 있었다.
최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상을 전공하다가 강의 과제를 계기로 팔레오아티스트가 됐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존경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라는 과제를 받고 공룡 연구의 대가인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때 어린 시절 품었던 공룡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 팔레오아트를 시작했다.
지난 2일 광주광역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성 작가는 어릴 때 공룡에게 큰 위안을 받은 경험이 팔레오아트로 이끌었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 사고로 왼쪽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이 작가는 “손가락이 세 개인 공룡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 계속 공룡 그림을 그리다 자연스레 미대에 진학했다.
원래 제품이나 콘텐츠를 기획하는 디자인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이 작가는 취업보단 팔레오아티스트의 길을 갔다.
팔레오아트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어린이들이 많이 찾는 공룡 그림책부터 국제 학술지에 제출되는 논문의 복원도로 사용된다.
최 작가는 2022년 이융남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의 논문에 ‘나토베나토르 폴리돈투스(Natovenator polydontus)’의 복원도를 실었다.
이 작가는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와 함께 전남 화순군에서 발견된 익룡 발자국을 토대로 팔레오아트를 만들었다.
두 작가는 모두 팔레오아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증’을 꼽았다.
팔레오아티스트는 고생물학 지식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작품을 인정받는다.
팔레오아티스트와 고생물학자가 공생 관계라고 하는 이유다. 고생물학자가 밝혀낸 새로운 사실이 팔레오아트에 반영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공룡도 실제 모습을 찾아간다.
예를 들어 육식 공룡인 스피노사우루스(Spinosaurus)는 뼈 화석이 새로 발견될 때마다 복원 모습이 변했다.
아직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은 공룡 종(種)이나 뼈가 발견되지 않은 부분은 상상으로 채운다. 다만 상상도 과학적이어야 한다.
거대한 공룡이 피부색이 화려해 눈에 잘 띄거나 신체 구조가 해부학에서 말이 안 되면 공룡은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 동물이 된다.
고증되지 않은 영역을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조율하는 과정은 팔레오아티스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다. 잘못 그린 팔레오아트가 공룡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