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각오하고 먹던 독초 기후변화 대응 작물로 변신
죽음 각오하고 먹던 독초 기후변화 대응 작물로 변신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앞쪽의 여인은 얼마나 굶었는지 일어서지도 못하고 팔만 겨우 뻗고 있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가 1863년에 발표한 이 동판화는 나폴레옹 군대의 공격을 받아 식량이 바닥난 마드리드의 거리 풍경을 그렸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는 훈훈한 장면이 왜 이렇게 음산한 분위기로 그려졌을까.
바로 굶주림이 워낙 심해 독이 있는 풀완두(grass pea)를 먹었기 때문이다. 앞쪽 여인은 굶주림에 힘이 빠진 게
아니라 이미 독에 중독돼 몸이 마비된 상태였다. 음식을 나눠주는 여인이 검은 옷을 입은 것도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죽을 만큼 굶주릴 때나 먹던 독초(毒草)가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를 이겨낼 작물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의 생명공학연구소인 존 인스 센터(John Innes Centre) 연구진은 최근 풀완두에서 독성 물질이 생합성되는 경로를 밝혀냈다고 밝혔다.
풀완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독성만 없다면 비가 부족하거나 염분이 강한 땅에서도 단백질을 제공하는 훌륭한 작물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독성을 없앤 신품종을 개발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시험 재배하고 있다.
독초에서 기후변화 대응 작물로 변신
풀완두(학명 Lathyrus sativus)는 콩과(科)의 한해살이 식물이다.
신경독성 아미노산인 옥살리디아미노프로피온산(ODAP)이 마비 증상을 유발한다. 풀완두의 독성은 이미 그리스 시대의 히포크라테스가 묘사한 바 있다.
그런데도 방글라데시와 인도, 파키스탄, 네팔, 에티오피아, 알제리 등에서는 지금도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는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재배되고 있어 중독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평소라면 괜찮을 정도의 독성도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존 인스 센터의 피터 에머리히(Peter Emmrich) 박사와 앤 에드워즈(Anne Edwards) 박사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풀완두 독 생성의 비밀을 밝혔다고 발표했다. 에드워즈 박사는
“조만간 안전한 버전의 풀완두콩를 만들어 영양이 부족하고 과열된 지구에 도움이 되는 작물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풀완두의 유전정보를 해독해 신경독소인 ODAP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효소 두 가지를 찾아냈다.
그중 하나는 광합성을 조절하는 옥살산염을 제거하는 효소로, 곰팡이가 식물을 공격할 때 사용한다.
풀완두는 이 효소를 옥살산염을 제거하는 대신 ODAP를 만드는 데 쓴다.
연구진은 독성이 사라지면서 동시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능력까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