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환자 스키장까지 이끈 줄기세포 연구 끝을 보겠다
파킨슨병 환자 스키장까지 이끈 줄기세포 연구 끝을 보겠다
노벨상 이후 10년 줄기세포 종주국 일본 위상 흔들린다
미국 하버드대 맥린병원의 김광수 교수는 지난 2013년 가을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그 해 여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학회 발표를 잘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학회에서 줄기세포의 일종인 유도만능줄기(iPS)세포로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자신을 파킨슨병 환자이자 사업가라고 밝힌 이 사람은 김 교수에게 연구비가 얼마가 들던 상관없으니 전폭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처음엔 사기라고 생각했다. 개인이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건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번 참석에 3000달러(약 400만원)가 필요한 학술대회를 직접 참석했다는 그의 말에 믿어 보기로 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2017년 세계 최초 파킨슨병 줄기세포 치료제를 이식받은 조지 로페즈 박사였다.
내과 의사 출신의 그는 2008년 파킨슨병을 진단 받은 지 7년 만에 김 교수를 만났다.
파킨슨병은 쾌락 호르몬으로 알려진 도파민 신경세포가 소실돼 나타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도파민은 신경세포간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운동기능이 떨어지고, 나중에는 온 몸 근육이 경직돼 사망한다.
근본적 치료제는 없고 합성 도파민을 하루 세 번 복용해 증상을 누른다.
김 교수는 “로페즈 박사가 2017년 연구실로 찾아와 ‘내가 당신의 실험 대상이 되겠다’고 말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떠올렸다.
젊은 시절 암벽타기 스카이다이빙을 즐겼던 로페즈 박사는 2017년 제대로 균형을 잡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돼 있었다.
김 교수는 로페즈 박사의 피부세포를 역분화시켜 iPS세포를 만들어 도파민 신경세포로 분화시켰다.
이렇게 제작한 줄기세포를 2017년 9월과 2018년 3월, 6개월 간격으로 환자 뇌 양쪽에 이식했다.
수술 후 3년 동안 환자 증상이 빠르게 개선됐다. 로페즈 박사는 스키장을 찾은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고,
김 교수는 이 과정을 2020년 논문으로 발표해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다만 수술 6년차인 현재 로페즈 박사의 상태는 더 좋아지지 않고 정체돼 있다.
김 교수는 환자 뇌에 이식한 도파민 신경세포가 기대만큼 자리를 잘 잡지 못했다고 봤다.
이 때문에 도파민 신경세포를 면역세포인 T세포와 함께 이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염증 반응을 줄여서 도파민 세포의 생존을 돕겠다는 취지다. 로페즈 박사는 수술 후에도 김 교수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며 2차 수술을 고대하고 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를 받은 후 미국 코넬대 조교수를 거쳐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부임했다.
코넬대에 재직한 28년동안 도파민 신경세포 조절 메커니즘을 연구했고, 하버드 의대에서는 20년 넘게 세포치료 연구를 했다.
김 교수는 현재 도파민 신경세포 분화 과정에 개입하는 단백질을 활용한 파킨슨병 치료제 신약도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은퇴할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연구가 재미있다”며
“하버드에서는 70세가 넘어서 연구하는 교수가 많고, 미국에는 90세까지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공이든 실패든 내 연구의 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김 교수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iPS세포를 주로 연구한 건가.
“나는 줄기세포 전문가는 아니다. 도파민이 어떻게 세포가 되고, 뇌에 어떻게 작용해서, 질병으로 연결되는 지를 주로
연구했고, 뇌 속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생기는 질환, 파킨슨병 치료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구했으니, 줄기세포로 도파민 신경세포를 만들어 이식하면 세포치료제 될 것이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