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최후의 날 한 가족의 처절한 사투

폼페이 최후의 날 한 가족의 처절한 사투
폼페이 최후의 날 한 가족의 처절한 사투
촉매 기술 대격변 백금 1%만으로 프로필렌 생산 가능해졌다
서기 79년, 이탈리아 남부의 베수비오 화산이 갑작스럽게 폭발하며 평화롭던 항구 도시 폼페이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화산재는 하늘로 수 킬로미터나 치솟았고, 뜨거운 암석과 유독가스는 초속 700km로 산비탈을 따라 도시를 덮쳤다.
불길이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는 동안, 한 가족은 무너져 내리는 화산재를 막아보려 나무 침대와 같은 물건으로 문을 방어했지만 이는 터무니없이 역부족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1일(현지 시각), 당시 고대 로마의 휴양지이자 무역 중심지였던 폼페이에 위치한 한 주택에서 벌어진 대재앙 속 생사의 사투를 다룬 연구 논문을 소개했다.
해당 논문은 폼페이 최후의 날을 비교적 상세히 복원하여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논문은 지난달 30일 전자 학술지 스카비 디 폼페이에 게재되었다.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 직후 하늘로 날아오른 화산재와 암석이 쏟아지며 대부분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운명을 맞았다.
당시 사람들은 지붕 아래 울부짖었지만 탈출할 새도 없이 화산재 속에 묻혔다.
이러한 비극적인 장면은 18세기 발굴 작업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폼페이 고고학 공원의 연구진은 이 도시의 베수비오 거리에서 발견된 작은 주택과 그 안에서 발견된 4구의 유해에 주목했다.
이 집의 식당에는 그리스 신화 속 프릭소스와 헬레 남매가 그려진 화려한 벽화가 있어 '헬레와 프릭소스의 집'이라고 명명되었다.
당시 화산이 폭발하자 다양한 크기의 암석들이 하늘로 치솟았는데, 그중 지름 2~64mm의 작은 암석은 '라필리'라고 불린다.
연구에 따르면 이 가족은 이런 라필리와 화산재가 쏟아지는 것을 막으려고 나무 침대로 문을 차단하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노력도 소용없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보통 집 중앙에 채광과 환기를 위한 오픈 공간이 있었다.
이 집 역시 중앙이 뚫려 있었으나 화산재가 그 틈을 통해 빠르게 들이닥쳤고, 실내는 금세 화산재와 돌덩이로 뒤덮였다.
연구진은 집에서 발견된 유골 4구가 한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 유해 근처에서는 당시 청동 부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그 유골이 아이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 부적은 어린 소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악운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여겨졌다.
유해들은 연회용 공간인 트리클리니움에서 발견되었다.
연구진은 이들이 작은 방으로 피신해 나무 침대로 문을 막으며 버텼다가 최후에 탈출을 시도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충격적인 점은 당시 이 집이 문지방과 같은 기초 구조물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공사 중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논문의 저자인 가브리엘 추크트리겔 박사는 "화산재와 함께 치명적인 열과 유독가스를 동반한 화산쇄설류가 산사태처럼 밀려들 때,
그 힘에 의해 집 일부가 붕괴되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들 중 일부가 노예였을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노예가 본래 이곳에서 살았는지 혹은 주인이 탈출 후에 피난처로 사용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폼페이 유적지에서는 오랜 기간 탐험가들과 도굴꾼들의 무책임한 발굴로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