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멕시코에는 흑인 카우보이가 있었다 DNA가 밝혀
17세기 멕시코에는 흑인 카우보이가 있었다 DNA가 밝혀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흑인 노예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수많은 노예의 비참한 삶이 역사로 남지 못한 것이다.
과학이 아메리카대륙 흑인 노예의 역사를 복원했다.
DNA를 통해 중남미에 백인보다 앞서 흑인 카우보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미국의 제철소에서 고된 노동을 하다 이름 없이 죽어간 흑인 노예들의 후손도 DNA로 찾아냈다.
누군가 지우려 했던 어두운 과거가 과학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7세기 아프리카에서 소와 목동 함께 수입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는 남북전쟁 후 자유인이 된 흑인 총잡이가 말을 타고 나온다.
서부영화하면 으레 백인 카우보이가 나오던 도식을 깬 것이다.
영화 배경보다 2세기나 앞서 실제로 중남미에 흑인 카우보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DNA 분석을 통해 제기됐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22일 카리브해와 멕시코에서 나온 400년 된 소의 뼈를 통해
중남미에서 처음 소를 키운 사람이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대 자연사박물관의 로버트 구랠닉(Robert Guralnick) 교수와 니컬러스 델솔(Nicolas Delsol)
박사 연구진이 발표한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달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렸다.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3년 두 번째 항해에서 스페인에서 가져온
소를 처음으로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 섬에 내렸다. 히스파니올라 섬은 왼쪽은 아이티,
오른쪽은 도미니카 공화국이 됐다.
이후 1500년대 후속 항해를 통해 유럽에서 가져온 소 500마리가 나중에 아메리카대륙 전체로 퍼져 엄청난 수로 늘었다.
연구진은 박물관들을 돌아다니며 멕시코와 히스파니올라 섬에 처음 도입된 소의 흔적을 찾았다.
연구진은 멕시코와 아이티의 초기 스페인 식민지에서 발굴한 소뼈 21점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유럽과 아프리카산 소와 비교했다.
세포핵 밖에 있는 에너지 발생기관인 미토콘트리아는 별도로 DNA를 갖고 있다.
미토콘트리아는 난자를 통해 후손에 전달되므로 모계 유전자를 추적하는 데 주로 쓰인다.
분석 결과 유럽인이 도착하고 1세기 동안 소는 대부분 스페인에서 온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멕시코 시티 중심부의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나온 뼈는 아프라카산 소와 DNA가 일치했다.
이 뼈는 1600년대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산 소를 수입했다고 알려진 기록보다 100년은 앞선 것이다.
멕시코 국립 인류학역사연구원의 에두아르도 코로나 마르티네즈(Eduardo Corona Martinez) 박사는 사이언스에
“새로운 증거를 통해 복잡한 역사가 드러났다”며
“처음에는 이베리아반도나 유럽 본토에서 소를 수입했다가 나중에는 아프리카산 소를 수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이 아프리카산 소를 수입한 것은 아프리카산 소가 카리브해와 멕시코의 열대 기후에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델솔 박사는 “덥고 습한 환경에 더 잘 맞는 소가 수입처를 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산 소의 수입은 노예무역도 불렀다. 유럽인이 오기 전에 중남미 원주민은 소나 돼지,
양과 같은 대형 가축을 본 적이 없었다. 연구진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인들은 중남미에서 목축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했다”며 “아프리카 목동들은 열대 환경에서 가축을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역사 기록에 따르면 1600년대 초 노예무역은 오늘날 카메룬의 풀라니(Fulani)족에 집중됐다.
이들은 목축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번 DNA 분석 결과는 같은 시기 소가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실을 밝혀 당시 소와 목동이 함께 하나의 결합 상품으로 아프리카에서 수입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