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의 잔치가 끝나면 술과 향이 남는다
누룩의 잔치가 끝나면 술과 향이 남는다
2만여년 전 사람 발자국 빙하기부터 北美에 인류 살았다
일본의 전통 술인 사케와 우리 술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술을 만드는 데 쌀과 물, 누룩(효모)만 쓴다는 점에서 우리 술과 사케는 닮아 있다.
그런데 맛을 보면 우리 술과 일본의 사케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특히 우리 술은 쌀과 물, 누룩이라는 단순한 재료만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술마다 개성이 천차만별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전문가들은 ‘누룩’이 우리 술과 사케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한다.
누룩은 된장을 만드는 메주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누룩은 밀이나 보리, 쌀 같은 전분질 원료에 자연의 곰팡이가 배양된 발효제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지방농업연구사는 “누룩을 이용해서 술을 빚는 건 동아시아가 동일한데 일본은 입국이라는 발효제를 사용하고 우리는 누룩이라는 발효제를 쓴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누룩과 입국의 가장 큰 차이는 ‘균’의 다양성에서 나온다. 입국은 인위적으로 하나의 균주만 자라게 하는데 비해 누룩은
자연 환경에서 배양하다보니 공기 중 곰팡이나 효모, 유산균 같은 다양한 야생 미생물이 누룩에서 자란다.
입국은 알코올과 향을 내기 위해 효모를 따로 첨가해야 하는데, 누룩은 다양한 미생물이 있어 효모를 첨가할 필요가 없다.
김혜련 한국식품연구원 전통식품연구단 책임연구원은 “일본 입국은 한 균주만 자라게 하기 때문에 맛이 단조로운데
우리 누룩은 다양한 미생물이 내는 효소 덕분에 복잡미묘한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우리 술의 차별화 포인트 ‘전통누룩’
“봄에서 여름을 거쳐서 가을까지 이어지는 계절의 시계를 우리가 복원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룩이 발효되는 45일 동안 발효실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주는 방식입니다.”
봄 기운이 물씬나던 지난 3월 14일, 용산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전라북도 정읍으로 향했다.
전통누룩으로 우리 술을 빚는 명인인 한영석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정읍역에서 택시를 타고 내장산 자락을 향해 25분 정도 가자 커다란 내장저수지를 끼고 있는 한영석 발효연구소가 모습을 보였다.
한 대표는 국내 최초의 ‘누룩 명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가 2020년 7월 한 대표를 전통발효 누룩 명인 1호로 지정했다.
한 대표는 고문헌 속의 전통누룩을 복원하고 있다. 녹두와 찹쌀이 2대 1의 비율로 들어가는 백수환동국 같은 전통누룩이 대표적이다.
이날은 모처럼 날이 맑은 덕분에 오랜 만에 새로운 누룩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대표가 안내한 발효실에 들어가자 이날 띄운 누룩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제 막 성형을 한 누룩은 아직 곰팡이가 피지 않아 새하얀 모습 그대로였다.
바깥은 아직 바람이 불면 쌀쌀한 기운이 돌았지만 발효실은 꽤나 무더웠다.
온도와 습도를 묻자 20도를 조금 넘는 온도에 습도는 80%가 넘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초복 정도의 날씨를 재현한 것이다.
한 대표가 만드는 전통누룩은 늦봄부터 초가을까지 90일간의 계절 변화를 45일로 줄인 발효실에서 발효를 한다.
일반적인 누룩 발효 기간이 20일 정도인 것에 비하면 두 배나 긴 셈이다.
한 대표는 “발효 기간을 늘려서 곰팡이의 진행 속도를 늦추면 향이 더 좋아지고, 발효취를 없앨 수 있다”며 “전통누룩은 곰팡이의 진행 속도를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0년 넘게 전통누룩 복원을 하고 있는 한 대표는 ‘누룩’이 우리 술의 핵심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입국을 이용하는 일본의 사케 제조법이 단순히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를 얻는데 그친다면, 우리 술의 전통누룩은 곰팡이를 이용해 다양한
효소를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이 효소들이 단순히 전분만 분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단백질이나 비타민 같은 여러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