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껍데기에 물폭탄 흔적 남는다
달팽이 껍데기에 물폭탄 흔적 남는다
달팽이는 느릿느릿 움직이지만 세상 모든 일을 알고 있다.
중국 과학자들이 달팽이가 지고 다니는 껍데기에서 초강력 폭풍우의 흔적을 찾아냈다.
앞으로 땅에서 나오는 달팽이 껍데기가 과거 특정 지역이나 환경에서 발생한 폭우를 분석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안자오퉁대의 옌홍(Hon Yan)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3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블루틴’에
“달팽이 껍데기에서 발견되는 성분이 허난성 폭우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7월 허난성 정저우시에 사흘간 1년치 강수량에 해당하는 617㎜가 내리면서 도시의 기능은 마비됐다.
허난성 일대에 내린 이 폭우로 398명이 숨졌다. 중국 매체들은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큰 비’라고 했다.
폭우가 껍데기의 산소에 반영
연구진은 정저우에서 잡은 달팽이 네 마리의 껍데기에서 산소동위원소 비율의 편차를 살폈다.
동위원소는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다른 것을 말한다.
산소는 중성자가 8개, 질량 16인 산소16(16O)이 대부분이지만, 중성자가 하나 더 많은 산소17(17O), 두 개 더 많은 산소18(18O)도 있다.
달팽이 껍데기는 탄소와 산소로 이뤄진 탄산칼슘으로 구성되는데 달팽이가 살던 환경에 따라 18O와 16O의 비율이 달라진다.
달팽이 네 마리 중 두 마리는 폭우가 내리기 전인 6월, 나머지 두 마리는 폭우가 끝난 9월과 12월에 각각 잡았다.
연구진은 질량분석기를 활용해 달팽이 껍데기의 성장 부위에 포함된 산소동위원소 18O와 16O 비율을 측정해 일별, 주별 기록을 만들었다.
분석 결과 2021년 6월과 9월 사이 산소동위원소 비율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 것으로 확인됐다
분석에 따르면 폭우가 쏟아지기 전 채집된 달팽이 껍데기에선 18O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날씨가 맑아서 증발이 많이 일어난 결과다.
산소 16을 가진 물은 산소 18이 있는 물보다 가벼워 더 잘 증발한다. 하지만 폭우가 쏟아지면서 달팽이 껍데기에는 16O가 더 많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결과는 정저우 폭우와 관련한 다른 분석 모델과 추정값과도 일치했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토대로 2021년 7월 20일 발생한 정저우 폭우가 산소동위원소 비율의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박물관의 달팽이 표본은 고기후 연구 자원
달팽이 껍데기가 기후 연구에 쓰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 인도 과학원과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영국 자연사박물관 공동 연구진은 1918년과 2009년 인도에서 수집한
아프리카 왕달팽이 껍데기에서 인도 여름 강우량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6월과 9월 사이에 많은 비가 내리는데 기존 정보로는 과거의 강우량을 알아내는데 한계가 있었다.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이 발전하면서 유공충이나 조개 껍데기를 활용한 고기후, 고해양학 연구가 많았다.
최근 들어 달팽이 껍데기가 기후 연구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과학자들은 세계 각국의 과학관과 대학, 박물관에서 보관하는 수많은 달팽이와 조개 껍데기 표본에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인도처럼 100년 전 기상 관측 자료가 부족한 나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고대 기후 퍼즐을 완성하면 현재의 기후 모델을 개선하고 앞으로 다가올 기상이변에 더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