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 흐른 이집트 벽화 지금도 선명한 이유는 ‘천연광물 물감’
수천년 흐른 이집트 벽화 지금도 선명한 이유는 ‘천연광물 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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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3000년, 길게는 5000년 동안 선명한 색감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림이 있다. 고대 이집트 유적지 곳곳에서 발견되는 벽화들이다.
현대 미술관의 정교한 보존 장치도 없이 이 그림들은 어떻게 수십세기에 달하는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걸까. 유럽 연구진이 ‘엑스선’을 활용한 기술로 그 비밀을 밝혀냈다.
벨기에 리에주대 유럽고고학센터의 데이비드 스트리베이 교수 연구팀은 12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에 이집트
벽화를 엑스선으로 분석한 결과 철과 구리 같은 천연광물로 만든 물감이 벽화의 색을 선명하게 유지한 비결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XRF 맵핑’이라 불리는 엑스선 기술을 이용해 이집트 벽화에 쓰인 물감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XRF 맵핑은 엑스선을 특정 물질에 발사해 그 물질이 어떤 원소를 포함하는지 분석하는 기술이다. 물감은 색깔별로 재료가 다른데,
그림을 향해서 엑스선을 쐈을 때 재료의 성분에 따라 엑스선이 흡수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이용했다.
분석 결과 고대 이집트 벽화에 쓰인 물감에 가장 많이 들어간 재료는 철과 구리였다.
철은 붉은색과 갈색을 만드는 데 쓰였고 구리는 녹색과 푸른색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이는 고대 이집트 벽화 속 사람들
피부가 대부분 갈색으로 표현된 것 때문이다. 녹색이나 푸른색은 벽화 속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과 장신구에 많이 쓰였다.
연구팀은 물감 재료로 천연 광물이 쓰였다는 점도 확인했다. 일례로 ‘공작석’이라 불리는 녹색 광물인 맬러카이트가 녹색 물감에 들어있었다.
스트리베이 교수는 “천연 재료는 화학적으로 안정적이며 지속력이 뛰어나다”며 “이집트 벽화가 몇천년에 걸쳐
색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천연 재료로 만든 물감 덕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향해 엑스선을 쏴서 물감 성분을 분석하는 건 언뜻 간단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이번 연구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XRF 맵핑용 장비를 실험실에서 고대 이집트 유적으로 옮기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집트 테베 네크로폴리스에 있는 ‘메나의 무덤’ 유적지 안까지 XRF 맵핑용 장비들을 하나씩 들고가야 했다.
그 다음 유적지 안에서 장비들을 다시 조립해 사용했다. 연구팀 일원인 캐서린 드피트 리에주대 유럽고고학센터 교수는 사이언스와
인터뷰에서 “외부 충격에 민감한 고가 장비도 많았기 때문에 장비를 유적지 안으로 옮기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며
“유적지 내부 환경이 매우 습하고 더웠기 때문에 분석 장비의 작업 속도가 느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그림을 지우거나 위에 물감을 덧칠하는 식으로 벽화가 수정된 것도 발견했다. 기원전 1279년부터 1213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했던 람세스 2세 벽화를 XRF 맵핑으로 분석하자 일부 묘사가 바뀐 흔적이 남아있던 것이다.
이에 연구팀은 논문에 “지금은 유령이 된 고대 이집트 화가들과 만난 기분”이라 적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