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양 로드킬’
길 없는 바다에서 벌어지는 ‘해양 로드킬’
점점 확장하는 도로와 늘어나는 교통량의 영향으로 야생동물이 도로를 건너다 달리는
차에 치어 숨지는 이른바 ‘로드킬’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길이 없는 망망대해인 바다에서도 같은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바다 동물이 크고작은 선박과 부딪혀서 목숨을 잃는 ‘해양 로드킬’이 점차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영국의 과학자들이 ‘해양 로드킬’을 줄이기 위한 네 가지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플리머스 해양생물학연구소와 사우스햄프턴대 연구진은 지금까지 해양 로드킬이 자주
일어난 곳과 자주 희생된 종을 모니터링하고, 앞으로 사고를 줄이기 위해 선박
운행 경로나 속도 등에 법적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해양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은 주로 고래와 상어 등 대형 해양동물들이다.
현재 전세계 해양을 다니는 선박은 10만 척이 넘는다. 최근 16년 동안 해운 교통량이 2배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2014년 기준 2050년까지 해운 교통량이 최대 120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만큼 대형 해양동물이 선박에 부딪혀 생명을 잃을 위험도 10배 이상 커진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해양 로드킬 사고뿐 아니라 동물이 스스로 선박을 피해 다니므로
이동 경로가 바뀌어 결국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태평양이나 대서양 등에서 동물과 충돌한 해양 사고는 반드시 신고해야 하는 규제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그간 얼마나 많은 동물이 해양로드킬에 희생됐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상어와 가오리, 홍어 등은 선박에 부딪쳐 죽으면 바닷속에 가라앉아 발견하기도 어렵다.
그나마도 고래와 돌고래, 거북이는 해상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 해수면에 떠다녀 발견되기가 쉬운 편이다.
남아공 넬슨만델라대 연구진이 2020년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즈 인 마린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래와 바다거북 등 체중 450㎏이 넘고 이동거리가 수백 수천 ㎞인 해양동물 약 75종이 선박 충돌 사고를 당할 위험이 크다.
이들 중 60종은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에 속하고, 3분의 1 이상은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이번에 논평을 발표한 영국 연구진도 사체가 빠르게 가라앉는
고래상어(Rhincodon typus)의 생태와 선박의 위치를 나타내는 위성 데이터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고래상어의 수평 이동 범위의 92%, 수직 이동 범위의 50%가 선박들의 이동 경로와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래상어에게 위험한 지역은 매년 전세계 해상 석유 무역의 3분의 1이 이뤄지는 아랍에미리트와 이란 사이의 호르무즈 해협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고래상어를 잡는 어업이 줄어도 결국 해양 로드킬 때문에 총 개체수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실제로 해상사고가 특정 동물 종뿐 아니라 생태계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했다. 해양 오염과 기후변화 등 해양 생물 다양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에 비해 해양 로드킬은 비교적 ‘인간이 다루기 쉬운 문제’라고 봤다.
즉, 인간의 노력으로 해양 로드킬 건수를 대폭 줄여 해양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