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박물관 전 세계 척추동물 표본 3D로 구현
자연사 박물관 전 세계 척추동물 표본 3D로 구현
2022년 넷플릭스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호기심의 방’ 시리즈를 공개했다.
‘헬보이’와 ‘판의 미로’를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에피소드마다 도입부에서 키보다 더 높은 서랍장에서 기묘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거기에 담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리즈 제목인 호기심의 방은 대항해시대 귀족들이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동식물 표본이나 진귀한 물건들을 보관하던 공간(Cabinet of Curiosities)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16세기 이탈리아 나폴리의 약제사 겸 탐험가인 페란트 임페라토(Ferrante Imperato)가 자신의 호기심의 방을 판화에 새겨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귀족들은 호기심의 방을 일반에 공개해 자신의 지적 편력과 모험심을 자랑했다.
오늘날 자연사 박물관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귀족들은 나중에 수집품을 대학에 기부해 실제 자연사 박물관도 탄생시켰다.
미국 플로리다대 자연사 박물관은 지난 6일 “연구기관 25곳이 6년에 걸쳐 500여년 전 호기심의 방에서 시작한 자연사 박물관을 인터넷에서 접근할 수 있는 3D(입체) 전시관으로 발전시켰다”고 밝혔다.
연구자나 학생, 교사가 자연사 박물관 소장품을 보고 연구하려면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대여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전 세계에서 언제든 인터넷으로 소장품을 보고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프로젝트의 요약본은 이날 국제 학술지 ‘바이오사이언스’에 발표됐다.
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의 데이비드 블랙번(David Blackburn) 박사는 미 국립과학재단(NSF)의 지원을 받아 ‘오픈버테브레이트(openVertebrate, oVert)’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줄여서 오버트라 부른 이 프로젝트는 25개 기관이 소장한 척추동물 표본을 3D 정보로 재구성해 온라인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은 양서류와 파충류, 어류, 포유류 속(屬) 절반 이상을 포괄하는 3D 정보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속은 종(種) 바로 위 분류 단계이다.
프로젝트의 공동 책임자인 플로리다 자연사 박물관의 에드워드 스탠리(Edward Stanley) 박사는 “사람들이 처음 표본을 수집했을 때만 해도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블랙번 박사는 “이제 전 세계의 과학자, 교사, 학생, 예술가들이 척추동물 3D 자료를 원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버트 연구진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1만3000건 이상의 척추동물 표본을 의료영상 기술인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로 촬영했다.
CT는 인체를 수백 장의 고해상도 평면 X선 영상으로 나눠 찍는 방식이다. 각각의 X선 영상은 조직 단면을 보여준다.
이를 모으면 인체 내부를 입체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당근을 얇게 썰고 다시 쌓으면 원래 모양이 되는 것과 같다.
오버트 영상은 X선을 기반으로 한만큼 대부분 골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부는 피부나 근육, 장기 같은 부드러운 조직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원하는 부분만 잘 보이도록 염색하기도 했다.
블랙번 박사는”박물관은 표본을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이 표본을 더 많이 활용하도록 장려해야 한다”며 “오버트 프로젝트는 표본이 닳지 않게 하면서 동시에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버트 프로젝트는 국립과학재단으로부터 초기 자금 250만달러를 지원받았고, 다른 기관으로부터 110만달러를 추가로 받았다.
처음에는 알코올로 채운 유리병에 담긴 어류와 파충류, 양서류 표본만 CT 촬영을 했지만, 나중에는 대형 척추동물까지 확대했다.
연구진은 아이다호 자연사 박물관의 지원을 받아 거대한 혹등고래의 디지털 모형도 만들었다.
골격을 하나하나 분해하고 따로 촬영한 다음 다시 실제 표본과 디지털 표본을 재조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