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으로 적을 죽인다 항암제가 된 바이러스
적으로 적을 죽인다 항암제가 된 바이러스
지난 5일 미국의 바이오기업인 씨지온콜로지(CG Oncology)는 “자체 개발 중인 방광암 치료제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패스트 트랙과 혁신의약품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FDA는 심각한 질환에 대해 첫 치료제로 개발됐거나 기존 치료제보다 월등한 효능을 보이는 의약품에 대해 이와 같은 신속 심사 혜택을 주고 있다.
씨지온콜로지가 미 FDA로부터 인정을 받은 방광암 치료제는 바로 종양 용해 바이러스(oncolytic virus)이다.
적군을 다른 적군과 싸우게 하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 치료 전략이다.
코로나나 에이즈로 사람 목숨을 위협하던 바이러스가 암을 정복할 구원자로 떠오르고 있다.
암세포 녹이는 바이러스 치료제
종양 용해 바이러스는 말 그대로 암세포를 녹이는 바이러스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항암 바이러스라고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 안에서 복제, 증식한 뒤 밖으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숙주 세포가 터져 죽는다. 항암 바이러스는 암세포만 공격하도록 변형된 형태이다.
정상 세포에 감염돼도 별다른 해가 없지만, 암세포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증식한 후 세포를 터뜨려 죽인다.
씨지온콜로지는 지난달 30일 비뇨기 종양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자체 개발한 바이러스 치료제에 대한 임상 3상 시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회사에 따르면 바이러스 항암제는 장기의 근육까지 침투하지 않은 방광암 환자 66명 중 64%에서 종양을 제거했다.
이런 종양을 내버려 두면 방광을 제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임상시험 결과, 환자의 76%에서 종양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중 74%는 종양이 최소 6개월 동안 재발하지 않았다.
이번 임상시험은 6개월 추적 관찰에 그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도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병원의 오메드 모벤(Omeed Moaven)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지에 “종양 용해 바이러스 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항암 바이러스를 연구했다.
암 환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갑자기 병세가 호전되는 사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미 FDA 승인을 받은 항암제는 미국 암젠의 ‘임리직(Imlygic, 상표명)’이 유일하다.
임리직은 성기나 입술 주변에 포진을 유발하는 단순 포진(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악성 피부암인 흑색종을 치료한다.
씨지온콜로지의 방광암 치료제가 신속심사 과정을 통과하면 임리직에 이어 미 FDA 승인을 받은 두 번째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가 된다.
다른 항암 바이러스 3종은 미국 밖에서 항암제로 승인됐으며, 가장 최근에는 일본에서 2021년 뇌종양인 신경교종 치료제가 승인됐다.
종양 직접 제거 대신 면역 반응 유도
제약산업 연구개발(R&D)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영국의 파마프로젝트에 따르면 2022년 현재 항암 바이러스 55종에 대해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며,
그중 3종이 임상시험 후기(3상) 단계에 있다. 100종이 넘는 항암 바이러스가 동물 실험 단계에 있다.
한국에서도 신라젠과 코오롱생명과학, 진메디신, 젠셀메드 등이 항암 바이러스를 개발하고 있다.
연구논문 수도 최근 10년 사이 18배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