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이 죽인 투구게, 대안의 시험법 나온다
코로나 백신이 죽인 투구게, 대안의 시험법 나온다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투구게(horseshoe crab)의 생존마저 위협했다.
바이러스가 투구게마저 감염시킨 게 아니다. 사람을 살릴 백신을 만들려면 시험에서 투구게를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구게는 4억5000만년 동안 예전 모습 그대로 살아온 해양 절지동물이다.
제약업계가 투구게를 희생하지 않는 대안의 백신 시험법을 마련했다. 약품 시험 표준을 만드는
비정부기구인 미국 약전(USP)은 지난 22일(현지 시각) 약물 시험에서 투구게의 혈액을 대체할 합성
대체물 사용에 관한 지침 초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투구게는 물론 먹이사슬로 연결된 바다새의 멸종까지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투구게 혈액성분으로 백신 독소 확인
약전은 이날 “세균성 내독소(內毒素, endotoxin) 시험에 재조합 인자 C(rFC)와 재조합 캐스케이드 시약(rCR)을 포함한
여러 시약 사용 방법이 추가 기술로 들어갔다”며 “이런 제안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방법과 재료의
사용을 확대하려는 미국 약전의 노력에 부응한다”고 밝혔다.
이번 수정안은 오는 11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재약사가 백신과 같은 의약품을 생산하려면 내독소 시험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내독소는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의 세포벽 안에 있는 물질이다.
평소엔 세균의 몸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세균이 증식하거나 죽어 세포벽이 깨지면 외부로 방출된다.
내독소는 발열 증세를 유발해 심하면 사망까지 이르게 한다. 만약 백신에 내독소가 들어 있으면 사람을 살리려다 오히려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제약업체들은 1970년대부터 투구게의 혈액 성분으로 만든 LAL 검사로 백신이 내독소에 오염됐는지 시험했다.
투구게의 혈액 중에 척추동물의 백혈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세포가 있는데,
이것으로 만든 단백질인 LAL이 세균의 내독소와 만나면 바로 묵과 같은 겔 상태가 된다.
백신에 독소가 있는지 눈으로 바로 알 수 있다. 투구게 혈액 시험은 다른 신약 개발에도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투구게 혈액을 채취하는 미국 찰스 리버 연구소 공장에 가면 투구게들이 줄지어 있고 호스마다 파란 피가 뽑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은 산소를 전달하는 물질인 헤모글로빈에 철분 성분이 있어 피가 붉지만, 투구게는 구리가
있는 헤모시아닌으로 산소를 전달해 피가 파란색을 띤다.
투구게의 파란 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혈액이다.
가공한 투구게 혈액 성분은 1갤런(3.8리터) 당 3만5000~6만 달러에 판매된다. 1리터에 2000만원이 넘는다는 말이다.
인공혈액 쓰는 대안의 시험법 채택 기대
이번에 미국 약전이 추가하려는 대안의 시험법은 투구게 혈액 성분을 만드는 유전자를 미생물에 끼워 넣어
만든 재조합 단백질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종의 인공 투구게 혈액을 쓰는 것이다.
재조합 인자 C는 1990년대에 개발됐다. 유럽 약전은 2019년부터 제조합 인자C의 사용을 승인했다.
미국에서도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인 지난 2020년 동물보호단체와 일부 제약사들이
투구게와 투구게 알을 먹고 사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재조합 단백질을 약물 시험에 도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약전이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제동을 걸었다.
당시 미국 약전 측은 현재 투구게 혈액을 이용한 독성 시험은 30년 동안 자료가 축적됐지만,
대안의 새 시험법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아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 세계 150국의 제약사는
미국 약전에 맞춰 의약품을 개발하고 생산한다. 미국 약전이 3년 만에 입장을 바꿔 대안의
시험법이 전 세계로 보급될 길이 열린 것이다. 미국 약전의 최고 과학 책임자인 재프 베네마(Jaap Venema)
박사는 이날 “가이드라인 초안이 기업의 제품에서 위험한 세균 오염을 시함하는 방법을 바꾸기 위한 첫 번째이자 중요한 단계”라고 말했다.